헌법재판소 2011. 8. 30. 선고 2006헌마788 전원재판부 [대한민국과일본국간의재산및청구권에관한문제의해결과경제협력에관한협정제3조부작위위헌확인]
판시사항

청구인들이 일본국에 대하여 가지는 일본군위안부로서의 배상청구권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하 ‘이 사건 협정’이라 한다) 제2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한·일 양국 간 해석상 분쟁을 위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아니하고 있는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위헌인지 여부(적극)

결정요지

헌법 전문, 제2조 제2항, 헌법 제10조와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문언에 비추어 볼 때, 피청구인이 위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의 절차로 나아갈 의무는 일본국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불법행위에 의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당한 자국민들이 배상청구권을 실현하도록 협력하고 보호하여야 할 헌법적 요청에 의한 것으로서, 그 의무의 이행이 없으면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중대하게 침해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피청구인의 작위의무는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로서 그것이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라고 할 것이다.

특히, 우리 정부가 직접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의 실현 및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회복에 대한 장애상태가 초래된 것은 우리 정부가 청구권의 내용을 명확히 하지 않고 ‘모든 청구권’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을 사용하여 이 사건 협정을 체결한 것에도 책임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그 장애상태를 제거하는 행위로 나아가야 할 구체적 의무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가지 않은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인지 여부는, 침해되는 기본권의 중대성, 기본권침해 위험의 절박성, 기본권의 구제가능성, 작위로 나아갈 경우 진정한 국익에 반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국가기관의 기본권 기속성에 합당한 재량권 행사 범위 내로 볼 수 있을 것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일본국에 의하여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하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배상청구권은 헌법상 보장되는 재산권일 뿐만 아니라, 그 배상청구권의 실현은 무자비하고 지속적으로 침해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신체의 자유를 사후적으로 회복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므로 피청구인의 부작위로 인하여 침해되는 기본권이 매우 중대하다. 또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고령으로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경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을 실현함으로써 역사적 정의를 바로세우고 침해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 있으므로, 기본권 침해 구제의 절박성이 인정되며, 이 사건 협정의 체결 경위 및 그 전후의 상황, 일련의 국내외적인 움직임을 종합해 볼 때 구제가능성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국제정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전략적 선택이 요구되는 외교행위의 특성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피청구인이 부작위의 이유로 내세우는 ‘소모적인 법적 논쟁으로의 발전가능성’이나 ‘외교관계의 불편’이라는 매우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사유를 들어, 기본권 침해의 중대한 위험에 직면한 청구인들에 대한 구제를 외면하는 타당한 사유라거나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할 국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상과 같은 점을 종합하면, 결국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의한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가는 것만이 국가기관의 기본권 기속성에 합당한 재량권 행사라 할 것이고, 피청구인의 부작위로 인하여 청구인들에게 중대한 기본권의 침해를 초래하였다 할 것이므로, 이는 헌법에 위반된다.

재판관 조대현의 인용보충의견

법정의견에 덧붙여, 대한민국은 이 사건 협정으로 인하여 청구인들이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 손해를 완전하게 보상할 책임을 진다고 선언하여야 한다.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민형기, 재판관 이동흡의 반대의견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이 적법하기 위해서는,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어야 하는데, 위 작위의무의 도출근거는 헌법의 명문, 헌법의 해석, 법령의 규정 3가지이다.

우선, 헌법 제10조의 국민의 인권을 보장할 의무, 제2조 제2항의 재외국민 보호의무, 헌법 전문(前文)은, 국가의 국민에 대한 일반적·추상적 의무를 선언한 것이거나 국가의 기본적 가치질서를 선언한 것일 뿐이어서 그 조항 자체로부터 국가의 국민에 대한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나올 수 없다고 할 것이고, 이는 우리 재판소의 확립된 판례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이 사건 협정은 한·일 양국이 당사자가 되어 상대방에 대하여 부담할 것을 전제로 체결된 조약이기에 위 협정 제3조로부터 ‘우리 정부가 청구인들에 대하여 부담하는 작위의무’는 도출될 수 없으며, 더구나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의무적’ 내용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위 협정 제3조에 기재된 외교적 해결, 중재회부 요청은 우리 정부의 ‘외교적 재량사항’에 해당한다는 선례( 헌재 2000. 3. 30. 98헌마206 결정)도 있는데, 다수의견은 결론적으로 위 선례와 배치되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 사건 협정 제3조가 말하는 ‘외교적 해결의무’는 그 이행의 주체나 방식, 이행정도, 이행의 완결 여부를 사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판단기준을 마련하기 힘든 고도의 정치행위 영역으로서, 헌법재판소의 사법심사의 대상은 되지만 사법자제가 요구되는 분야에 해당한다.

일본에 의하여 강제로 위안부로 동원된 후 인간의 존엄과 가치마저 송두리째 박탈당한 이 사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구제해 주어야 할 절박한 심정을 생각하면 어떠한 방법으로든 국가적 노력을 다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우리 모두 간절하나 헌법과 법률의 규정 및 그에 관한 헌법적 법리해석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피청구인에게 그 외교적 문제해결을 강제할 수는 없다. 이는 권력분립의 원칙상 헌법재판소가 지켜야 하는 헌법적 한계이다.

참조조문

헌법 전문, 제2조 제2항, 제10조,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1965. 6. 22. 체결, 1965. 12. 18. 발효) 제2조, 제3조

참조판례

헌재 1993. 12. 23. 89헌바189, 판례집 5-2, 646, 헌재 2008. 7. 31. 2004헌바81, 판례집 20-2상, 91, 100-101

청 구 인

이○수 외 63인 (대리인 변호사 차지훈 외 14인) 

피청구인

외교통상부 장관대리인 법무법인 화우담당변호사 김성식 외 3인 

주 문

청구인들이 일본국에 대하여 가지는 일본군위안부로서의 배상청구권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2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한·일 양국 간 해석상 분쟁을 위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아니하고 있는 피청구인의 부작위는 위헌임을 확인한다.

이 유

1. 사건개요 및 심판대상

가. 사건개요

(1) 청구인들은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동원되어 성적 학대를 받으며 위안부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다. 피청구인은 외교, 외국과의 통상교섭 및 그에 관한 총괄·조정, 국제관계 업무에 관한 조정, 조약 기타 국제협정, 재외국민의 보호·지원, 재외동포정책의 수립, 국제정세의 조사·분석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국가기관이다.

(2) 대한민국은 1965. 6. 22. 일본국과의 사이에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 이하 ‘이 사건 협정’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다.

(3) 청구인들은, 청구인들이 일본국에 대하여 가지는 일본군위안부로서의 배상청구권이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하여, 일본국은 위 청구권이 위 규정에 의하여 모두 소멸되었다고 주장하며 청구인들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고 있고, 대한민국 정부는 청구인들의 위 청구권은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어서, 한·일 양국 간에 이에 관한 해석상 분쟁이 존재하므로, 피청구인으로서는 이 사건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위와 같은 해석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2006. 7. 5. 이러한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심판대상

이 사건 심판대상은, 청구인들이 일본국에 대하여 가지는 일본군위안부로서의 배상청구권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2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한·일 양국 간 해석상 분쟁을 위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아니하고 있는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이다.

이와 관련된 위 협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관련규정]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 1965. 6. 22. 체결, 1965. 12. 18. 발효)

대한민국과 일본국은, 양국 및 양국 국민의 재산과 양국 및 양국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것을 희망하고, 양국 간의 경제협력을 증진할 것을 희망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제1조

1. 일본국은 대한민국에 대하여,

(a)현재에있어서1천8십억일본원(108,000,000,000원) 으로 환산되는 3억 아메리카합중국 불($300,000,000)과 동등한 일본 원의 가치를 가지는 일본국의 생산물 및 일본인의 용역을 본 협정의 효력발생일로부터 10년 기간에 걸쳐 무상으로 제공한다. 매년의 생산물 및 용역의 제공은 현재에 있어서 1백 8억 일본 원(10,800,000,000원)으로 환산되는 3천만 아메리카합중국 불($30,000,000)과 동등한 일본 원의 액수를 한도로 하고, 매년의 제공이 본 액수에 미달되었을 때에는 그 잔액은 차년 이후의 제공액에 가산된다. 단, 매년의 제공 한도액은 양 체약국 정부의 합의에 의하여 증액될 수 있다.

(b)현재에 있어서 7백 20억 일본 원(72,000,000,000원)으로 환산되는 2억 아메리카합중국 불($200,000,000)과 동등한 일본 원의 액수에 달하기까지의 장기 저리의 차관으로서, 대한민국 정부가 요청하고, 또한 3의 규정에 근거하여 체결될 약정에 의하여 결정되는 사업의 실시에 필요한 일본국의 생산물 및 일본인의 용역을 대한민국이 조달하는 데 있어 충당될 차관을 본 협정의 효력 발생일로부터 10년 기간에 걸쳐 행한다. 본 차관은 일본국의 해외경제협력기금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것으로 하고, 일본국 정부는 동 기금이 본 차관을 매년 균등하게 이행할 수 있는데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전기 제공 및 차관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유익한 것이 아니면 아니된다.

2. 양 체약국 정부는 본조의 규정의 실시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권고를 행할 권한을 가지는 양 정부 간의 협의기관으로서 양 정부의 대표자로 구성될 합동위원회를 설치한다.

3. 양 체약국 정부는 본조의 규정의 실시를 위하여 필요한 약정을 체결한다.

제2조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2. 본조의 규정은 다음의 것(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각기 체약국이 취한 특별조치의 대상이 된 것을 제외한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a) 일방체약국의 국민으로서 1947년 8월 15일부터 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사이에 타방체약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사람의 재산, 권리 및 이익

(b)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있어서의 통상의 접촉의 과정에 있어 취득되었고 또는 타방체약국의 관할 하에 들어오게 된 것

3. 2의 규정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체약국의 관할 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와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제3조

1.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

2. 1.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어느 일방 체약국의 정부가 타방 체약국의 정부로부터 분쟁의 중재를 요청하는 공한을 접수한 날로부터 30일의 기간 내에 각 체약국 정부가 임명하는 1인의 중재위원과 이와 같이 선정된 2인의 중재위원이 당해 기간 후의 30일의 기간 내에 합의하는 제3의 중재위원 또는 당해 기간 내에 이들 2인의 중재위원이 합의하는 제3국의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중재위원과의 3인의 중재위원으로 구성되는 중재 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 단, 제3의 중재위원은 양 체약국 중의 어느 편의 국민이어서는 아니 된다.

3. 어느 일방 체약국의 정부가 당해 기간 내에 중재위원을 임명하지 아니하였을 때, 또는 제3의 중재위원 또는 제3국에 대하여 당해 기간 내에 합의하지 못하였을 때에는 중재위원회는 양 체약국 정부가 각각 30일의 기간 내에 선정하는 국가의 정부가 지명하는 각 1인의 중재위원과 이들 정부가 협의에 의하여 결정하는 제3국의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중재위원으로 구성한다.

4. 양 체약국 정부는 본조의 규정에 의거한 중재위원회의 결정에 복한다.

제4조

본 협정은 비준되어야 한다. 비준서는 가능한 한 조속히 서울에서 교환한다. 본 협정은 비준서가 교환된 날로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2. 당사자들의 주장

가. 청구인들의 주장요지

(1) 일본국이 청구인들을 성노예로 만들어 가한 인권유린행위는 ‘추업을 행하기 위한 부녀자 매매 금지에 관한 조약’, ‘강제노동금지협약{국제노동기구(ILO) 제29호 조약}’ 등의 국제조약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이 사건 협정의 대상에는 포함된 바 없다.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타결된 것은 우리 정부의 국민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만이고, 우리 국민의 일본국에 대한 개인적 손해배상청구권은 포기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일본국은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에 의하여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였다고 주장하며 청구인들에 대한 법적인 손해배상책임을 부인하고 있고, 이에 반하여, 우리 정부는 2005. 8. 26.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국의 법적 책임이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여, 한·일 양국간에 이에 관한 해석상의 분쟁이 존재한다.

(2) 이 사건 협정 제3조는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한·일 양국간의 분쟁이 있을 경우 외교상 경로나 중재절차에 의한 해결방법을 규정함으로써, 체약국에게 위 협정의 해석과 관련한 분쟁해결의무를 부담시키고 있으므로, 우리 정부에게는 위와 같은 이 사건 협정의 해석과 관련한 분쟁의 해결을 위한 작위의무가 있다.

(3) 또한, 우리 정부로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음을 명시하고 있는 헌법 전문,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국가의 기본적 인권 보장의무를 선언하고 있는 헌법 제10조, 재산권의 보장에 관한 헌법 제23조 및 이 사건 협정의 체결 당사자로서 행정상 신뢰보호의 원칙에 입각한 작위의무가 있고, 헌법 제37조 제1항 소정의 열거되지 않은 기본권인 외교적 보호권에 대응한 외교적 보호의무가 있다.

(4)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실효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외교적 보호조치나 분쟁해결수단의 선택 등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있는바, 이러한 행정권력의 부작위는 위의 헌법규정들에 위배되는 것이다.

나. 피청구인의 의견요지

(1)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이에 의거하여 기본권의 주체가 행정행위를 청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의 주체가 그 의무를 해태하는 경우에 허용되는 것인바, 청구인들은 피청구인의 부작위로 인하여 침해된 자신들의 기본권이 무엇인지를 적시하지 않고 있다. 청구인들에 대한 불법행위와 그 책임의 주체는 일본 정부이고 우리 정부가 아니며, 정부의 외교행위는 넓은 재량이 허용되므로 이 사건 협정에 따른 분쟁해결을 위한 국가의 구체적 작위의무는 인정될 수 없다.

또한, 우리 정부는 청구인들의 복지를 위하여 힘닿는 대로 노력하고 있고,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여 온 바 있으므로,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1항에 따른 작위의무의 불이행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

(2)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외교적 보호권은 국제법상 다른 나라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자국민이 입은 피해와 관련하여 그 국민을 위하여 국가가 자신의 고유한 권한으로 취하는 외교적 행위 또는 그 밖의 평화적 해결방식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 귀속주체는 ‘국가’일 뿐 ‘개인’이 자국 정부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므로, 헌법상 기본권이라 할 수 없다.

나아가, 이러한 외교적 보호권의 행사 여부 및 행사방법에 관해서는 국가의 광범위한 재량권이 인정되고,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해석상으로도 일방 체약국이 협정의 해석과 실시에 관한 분쟁을 반드시 중재위원회에 회부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 사건 협정에 따른 분쟁해결수단의 선택은 국가가 국익을 고려하여 외교적으로 판단할 문제이고, 구체적인 외교적 조치를 취하여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는 할 수 없다.

3. 이 사건의 배경

이 사건에 관한 판단을 하기 위한 전제로서, 이 사건의 배경 및 전체적 경위를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가. 이 사건 협정의 체결경위 및 그 후의 보상처리과정

(1) 해방 후 한국에 진주한 미군정 당국은 1945. 12. 6. 공포한 군정법령 제33호로써 재한 구 일본재산(在韓 舊 日本財産)을 그 국유·사유를 막론하고 미군정청에 귀속시켰고, 이러한 구 일본재산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직후인 1948. 9. 20.에 발효한 ‘한미간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협정’으로 한국 정부에 이양되었다.

(2) 한편, 1951. 9. 8. 샌프란시스코에서 체결된 연합국과 일본국과의 평화조약에서는 한국에게 일본에 대하여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지 않았고, 다만, 위 조약 제4조 a항에 일본의 통치로부터 이탈된 지역의 시정 당국 및 주민과 일본 및 일본 국민 간의 재산상 채권·채무관계는 이러한 당국과 일본 간의 특별약정으로써 처리한다는 것을, 제4조 b항에 일본은 전기 지역에서 미군정 당국이 일본 및 일본인의 재산을 처분한 것을 유효하다고 인정한다는 것을 각 규정하였다.

(3) 위 조약 제4조 a항의 취지에 따라 대한민국 및 대한민국 국민과 일본국 및 일본 국민 간의 재산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하여, 1951. 10. 21. 예비회담 이후 1952. 2. 15. 제1차 한·일회담 본회의가 열려 우리나라와 일본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회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래, 7차례의 본회의와 이에 따른 수십 차례의 예비회담, 정치회담 및 각 분과위원회별 회의 등을 거쳐, 1965. 6. 22. 이 사건 협정과 어업에 관한 협정,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 및 대우에 관한 협정,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등 4개의 부속협정이 체결되기에 이르렀다.

(4) 피청구인이 제출한 ‘청구권 관계 해설자료’에 의하면, 제1차 한·일회담(1952. 2. 15.∼4. 25.)시 우리 정부는 ‘한·일간 재산 및 청구권 협정 요강 8개항’(이하 ‘8개 항목’이라 한다)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1. 한국에서 반출된 고서적, 미술품, 골동품, 그 외 국보, 지도원판 및 지금, 지은을 반환할 것, 2. 1945. 8. 9. 현재, 일본 정부의 대 조선총독부 채무를 변제할 것, 3. 1945. 8. 9. 이후, 한국에서 이체 또는 송금된 금액을 반환할 것, 4. 1945. 8. 9. 현재, 한국에 본사 또는 주 사무소가 있는 법인의 재일 재산을 반환할 것, 5. 한국법인 또는 자연인의 일본 및 일본국민에 대한 일본국채, 공채, 일본은행권,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그 외 한국인의 청구권을 변제할 것, 6. 한국 법인 또는 한국 자연인 소유의 일본 법인 주식 또는 그 외 증권을 법적으로 인정할 것, 7. 전기 재산 또는 청구권에서 발생한 과실을 반환할 것, 8. 전기 반환 및 결제는 협정 성립 후 즉시 개시하고 늦어도 6개월 이내에 종료할 것의 8개 항목이다.

(5) 그러나 제1차 회담은 위 8개 항목의 청구권 주장에 대응한 일본 측의 대한·일본인재산청구권 주장으로 결렬되었고, 이후 독도 문제 및 평화선 문제에 대한 이견, “일본에 의한 36년간의 한국통치는 한국에 유익한 것이었다.”는 일본 측 수석대표 구보타(久保田) 망언 및 양국의 정치적 상황 등으로 제4차 한·일회담까지는 청구권 문제에 관한 실질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6) 그 뒤 8개 항목에 대한 실질적 토의가 이루어진 것은 제5차 한·일회담(1960. 10. 25.∼1961. 5. 15.)이었는데, 8개 항목 각 항에 대한 일본 측의 입장은 대체로, 제1항과 관련하여서는, 지금 및 지은은 합법적인 절차에 의하여 반출한 것이므로 반환의 법적 근거가 없고, 제2, 3, 4항과 관련하여서는, 한국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미군정법령 제33호가 공포된 1945. 12. 6. 이후의 것에 한하며, 제5항과 관련하여서는 한국 측이 개인의 피해에 대한 보상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한국 측에 철저한 근거의 제시를 요구, 즉, 구체적인 징용, 징병의 인원수나 증거자료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제5차 회담의 청구권 위원회에서는 1961. 5. 16. 군사정변에 의해 회담이 중단되기까지 8개 항목의 제1항부터 제5항까지 토의가 진행되었으나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를 확인하였을 뿐, 실질적인 의견 접근을 이루는 데는 실패하였다.

(7) 이에 1961. 10. 20. 제6차 한·일회담이 재개된 후에는 청구권에 대한 세부적 논의는 시일만 소요될 뿐 해결이 요원하다는 판단 하에 정치적 측면의 접근이 모색되었다. 1961. 11. 22. 박정희·이케다 회담 이후 1962. 3. 외상회담에서는 한국 측의 지불요구액과 일본 측의 지불용의액을 비공식적으로 제시하기로 하였고, 그 결과 한국 측의 순변제(純辨濟) 7억 불에 대하여 일본 측의 순변제 7만 4천불 및 차관 2억 불이라는 차이가 확인되었다.

(8)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측은 당초부터 청구권에 대한 순변제로 하면 법률관계와 사실관계를 엄격히 따져야 될 뿐 아니라 38선 이남에 국한되어야 하며 그 금액도 적어져서 한국 측이 수락할 수 없게 될 터이니, 유상과 무상의 경제협력의 형식을 취하여 금액을 상당한 정도로 올리고 그 대신 청구권을 포기하도록 하자고 제안하였다. 이에 대하여 한국측은 청구권에 대한 순변제로 받아야 하는 입장이나 문제를 대국적 견지에서 해결하기 위하여 청구권 해결의 테두리 안에서 순변제와 무상조 지불의 2개 명목으로 해결할 것을 처음에 주장하였고, 그 후에 다시 양보하여 청구권 해결의 테두리 안에서 순변제 및 무상조 지불의 2개 명목으로 하되 그 금액을 각각 구분 표시하지 않고 총액만 표시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것을 제의하였다.

(9) 이후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일본에서 이케다 일본 수상과 1차, 오히라 일본 외상과 전후 2차에 걸쳐서 회담하고, 오히라 외상과의 1962. 11. 12. 제2차 회담시 청구권 문제의 금액, 지불세목 및 조건 등에 관하여 양측 정부에 건의할 타결안에 관한 원칙적인 합의를 하였고, 구체적 조정과정을 거쳐 제7차 한·일회담이 진행 중이던 1965. 4. 3. 당시 외무부 장관이던 이동원과 일본의 외무부 대신이었던 시이나 간에 ‘한·일 간의 청구권 문제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1965. 6. 22. 명목을 구분표시하지 않고 일본이 대한민국에게 일정 금액을 무상 및 차관으로 지불하되,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이 사건 협정이 체결되었다.

(10) 그 후 우리 정부는 1966. 2. 19. ‘청구권자금의운용및관리에관한법률’(1982. 12. 31. 법률 제3613호로 폐지)을 제정하여 무상자금 중 민간보상의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였고, 이후 1971. 1. 19. ‘대일민간청구권신고에관한법률’(1982. 12. 31. 법률 제3614호로 폐지)을 제정하여 보상신청을 받았으나, 그 대상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징용·징병된 사람 중 사망자와 위 회담 과정에서 대일 민간청구권자로 논의되어 알려졌던 민사채권 또는 은행예금채권 등을 가지고 있는 민사청구권 보유자에 한정되었고, 그 뒤 1974. 12. 21. ‘대일 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1982. 12. 31. 법률 제3614호로 폐지)을 제정하여 1975. 7. 1.부터 1977. 6. 30.까지 합계 91억 8,769만 3천원을 지급하였다.

(11)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이 사건 협정체결을 위한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전혀 논의되지 않았고, 8개 항목 청구권에도 포함되지 않았으며, 이 사건 협정 체결 후 입법조치에 의한 보상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나.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제기와 진행

(1) 1990. 11. 16.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발족과 1991. 8.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김○순(1997. 12. 사망)의 공개기자회견을 통하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2) 일본 정부는 그에 관한 책임을 완전히 부인하면서 군위안부를 민간의 접객업자가 군을 따라다니며 데리고 다닌 ‘매춘부’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였으나, 당시 중앙대학 교수이던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가 1992. 1. 일본방위청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일본군이 군위안부 징집에 직접 관여한 관계공문서 6점을 찾아내자, 그 입장을 대폭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3) 피해자의 출현과 관련 자료의 발굴 및 안팎의 여론에 밀려 진상 조사에 착수한 일본 정부는, 1992. 7.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의 관여는 인정하였으나 강제연행을 입증하는 자료는 없다는 1차 조사결과를 공표하였다가, 1993. 8. 4. 제2차 정부조사결과와 함께 일본군 및 관헌의 관여와 징집·사역에서의 강제를 인정하고, 문제의 본질이 중대한 인권 침해였음을 승인하며 사죄하는 내용의 고노 관방장관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4) 위안소는 1932년 상해사변시 구 일본군 병사에 의해 강간사건이 다발하면서 현지인들의 반발과 성병 등의 문제로 이어지자 그 방지책으로서 일본해군이 설치한 것이 최초였다. 일본군은 1937. 7.부터 중일전쟁으로 병력을 중국으로 다수 송출하면서 점령지에 군위안소를 설치했는데, 1937. 12. 남경대학살 이후 그 수가 증가되었다. 이에는 군인들에게 ‘정신적 위안’을 제공함으로써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에서 이탈하려는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불만을 유화시키며, 특히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식민지 여성들을 ‘위안부’로 ‘고용’함으로써 군의 기밀이 새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줄이겠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1941년부터 아시아태평양전쟁 중 일본군은 동남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점령지역에서도 군위안소를 설치했다. 공문서에 의해 확인된 군위안소설치지역으로는 조선, 중국, 홍콩, 마카오, 필리핀 등 일본이 침략한 지역이다. 일본군위안부의 수는 8만에서 10만 혹은 20만 정도로까지 추정되고 있으며, 그 중 80%는 조선 여성들이었고, 그 외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국적은 필리핀, 중국, 대만, 네덜란드 등이다.

(5) 이에 우리 정부는 1993. 6. 11.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법률 제4565호)’을 제정하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기 시작하였지만, 일본 정부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이 사건 협정으로 이미 모두 해결된 상태라서 새롭게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1994. 8. 31. 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훼손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으로 인도적 견지에서 개별적인 위로금이나 정착금을 지급할 수 있고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 차원에서 아시아여성발전기금의 조성 등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6) 한국, 대만 등지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과 지원단체들은 아시아여성발전기금의 본질이 일본 정부의 책임회피라고 판단하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정당한 배상의 대상이 아닌 인도주의적 자선사업의 대상으로 보는 기금에 일찌감치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으며,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아시아여성기금의 활동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위 기금에서 돈을 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정부예산과 민간모금액을 합쳐 위 기금이 지급하려 한 4,300만 원을 피해자들에게 일시금으로 지급하였다.

(7) 한편, 김○순을 비롯한 9명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1991. 12. 6. 일본을 상대로 아시아태평양전쟁희생자 보상청구를 하였으나, 2004. 11. 29. 최고재판소에서 상고가 기각되면서 패소로 막을 내렸다. 위 소송과정에서 항소심인 도쿄고등재판소는 원고들이 안전배려의무 및 불법행위에 근거한 손해배상채권을 취득하였을 가능성이 있으나, 이는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3항의 재산, 권리 및 이익에 해당하여 모두 소멸하였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1992. 12. 25. 제기된 부산 군대성노예 여자근로정신대 공식사죄 등 청구소송에서도 1심에서 일부 승소하였으나 항소심에서 파기되었고, 최고재판소에서 2003. 3. 25. 상고불수리결정이 내려졌다. 나아가 재일한국인 송신도 등이 1993. 4. 5. 제기한 군대성노예 사죄보상소송도 2003. 3. 28.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기각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8) 이에 우리 정부는 2004. 2. 13. 한·일회담 관련 문서의 공개를 명하는 판결에 따라 관련문서가 공개되자, 국무총리를 공동위원장으로 하고 피청구인을 정부위원으로 하는 ‘민관공동위원회’의 2005. 8. 26. 결정을 통해, 이 사건 협정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과 같이 일본 정부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인정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아래에서 보는 미 하원의 결의안 채택, 2008년 유엔인권이사회 정기검토회의의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각국의 권고와 질의를 담은 실무그룹 보고서의 정식 채택에 맞서서, ① 고노 담화를 통한 사과, ② 이 사건 협정을 통한 법적 문제의 해결, ③ 아시아여성기금의 활동 등을 통해 일본군위안부 관련 문제가 완결되었다고 주장하였다.

(9) 위와 같은 일련의 일본 정부의 조치 및 태도는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국제사회로부터도 수용되지 못했다.

유엔 인권소위원회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지속적인 연구활동을 수행하여 왔는바, 그 첫 번째 보고서인 1996. 1. 4.자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서는, 2차 대전 때 강제연행된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일본국의 인권침해는 명백히 국제법 위반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일본에 대하여 국가차원의 손해배상, 책임자 처벌, 정부 보관중인 모든 자료의 공개, 서면을 통한 공식사죄, 교과서 개정 등을 권고하는 6개 항의 권고안을 제시하였으며, 1996. 4. 19. 제52차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위 보고서의 채택결의가 있었다.

또한 1998. 8. 12. 유엔 인권소위원회(차별방지 소수자 보호 소위원회)에서는 위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의 내용이 보강된 특별보고관 게이 맥두걸의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책임, 책임자 처벌을 골자로 하는 보고서가 발표되어 채택되었다. 위 ‘맥두걸 보고서’에서는 ① 위안부제도가 성노예제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위안소를 강간센터(rape center, rape camp)로 규정하여 강제성을 부각하였고, ② 일본의 책임자 처벌문제를 강조하면서 생존 전범의 색출을 주장하였으며, ③ 유엔사무총장은 일본 정부로부터 최소한 연 2회 이상 진행사항을 보고받고, 유엔 인권위원회 고등판무관은 일본 정부와 협력하여 책임자의 처벌 및 적절한 배상을 위한 패널을 구성하는 등 유엔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였고, ④ 생존자들이 고령인 점을 고려하여 긴급하고 신속하게 일본 정부의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10) 이후 고이즈미, 아베 정권 등 일본의 보수우경화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서 삭제하고 고노 담화마저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개별국가에서도 이에 대하여 단호하게 대처하기 시작하였다.

미국 하원은 2007. 7. 30. 만장일치로 일본군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였는데, 그 주요내용은 ① 일본 정부는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국가들과 태평양 제도를 식민지화하거나 전시에 점령하는 과정에서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강제로 젊은 여성들을 위안부로 알려진 성의 노예로 만든 사실을 확실하고 분명한 태도로 공식 인정하면서 사과하고 역사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② 일본 정부는 일본군들이 위안부를 성의 노예로 삼고 인신매매를 한 사실이 없다는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분명하고 공개적으로 반박하여야 한다. ③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가 제시한 위안부 권고에 따라 현 세대와 미래세대를 대상으로 끔찍한 범죄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그 후 네덜란드 하원(2007. 11. 8.), 캐나다 연방의회 하원(2007. 11. 28.), 유럽의회(2007. 12. 13.)가 20만 명 이상의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동원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와 역사적·법적 책임의 인정,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현재와 미래의 세대들에게 교육시킬 것 등을 포함한 결의안을 순차로 채택하였다.

(11) 유엔인권이사회는 2008. 6. 12. 일본 인권상황 정기검토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각국의 권고와 질의를 담은 실무그룹보고서를 정식으로 채택하였으며, 유엔 B규약인권위원회는 2008. 10. 30. 제네바에서 일본의 인권과 관련된 심사보고서를 발표하고, 일본 정부에 대해 처음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 다수가 수용할 수 있는 형태로 사죄할 것을 권고했다.

(12) 우리나라에서도 2008. 10. 27.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공식사과 및 배상촉구 결의안이 전체 의원 261명 중 260명의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2009. 7. 대구광역시의회를 시작으로 2011. 3. 현재 46개에 이르는 전국 기초광역의회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를 채택하였다. 또한 대한변호사협회와 일본변호사협회는 2010. 12. 11.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① 이 사건 협정의 완전 최종 해결 조항의 내용과 범위에 관한 양국 정부의 일관성 없는 해석·대응이 피해자들의 정당한 권리 구제를 방해하고 피해자들의 불신감을 조장해 왔다는 것을 확인하고, ② 사죄 및 금전보상을 포함한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입법이 일본 정부 및 국회에 의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확인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그 결의들 및 성명은 한 사람의 피해자라도 더 살아 있을 때 일본 정부가 입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에도 보다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취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4. 적법요건에 대한 판단

가. 행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이에 의거하여 기본권의 주체가 행정행위 내지 공권력의 행사를 청구할 수 있음에도 공권력의 주체가 그 의무를 해태하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헌재 2000. 3. 30. 98헌마206, 판례집 12-1, 393, 393- 393).

위에서 말하는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가 의미하는 바는, 첫째, 헌법상 명문으로 공권력 주체의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경우, 둘째, 헌법의 해석상 공권력 주체의 작위의무가 도출되는 경우, 셋째, 공권력 주체의 작위의무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 등을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헌재 2004. 10. 28. 2003헌마898, 판례집 16-2하, 212, 219).

나. 피청구인의 작위의무

만약 공권력의 주체에게 위와 같은 작위의무가 없다면 헌법소원은 부적법하게 되므로, 이 사건에서 피청구인에게 위와 같은 작위의무가 존재하는지를 살핀다.

이 사건 협정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으로서 헌법 제6조 제1항에 따라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런데 위 협정 제3조 제1항은,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 같은 조 제2항은, “1.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어느 일방 체약국의 정부가 타방 체약국의 정부로부터 분쟁의 중재를 요청하는 공한을 접수한 날로부터 30일의 기간 내에 각 체약국 정부가 임명하는 1인의 중재위원과 이와 같이 선정된 2인의 중재위원이 당해 기간 후의 30일의 기간 내에 합의하는 제3의 중재위원 또는 당해 기간 내에 이들 2인의 중재위원이 합의하는 제3국의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중재위원과의 3인의 중재위원으로 구성되는 중재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라고 각 규정하고 있다.

위 분쟁해결조항에 의하면,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하여 우리나라와 일본 간에 분쟁이 발생한 경우, 정부는 이에 따라 1차적으로는 외교상 경로를 통하여, 2차적으로는 중재에 의하여 해결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것이 앞에서 본 ‘공권력 주체의 작위의무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지를 본다.

청구인들은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동원되어 성적 학대를 받으며 위안부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로서, 일본국에 대하여 그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으나, 일본국은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배상청구권이 모두 소멸되었다며 청구인들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고 있는 반면, 우리 정부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청구인들의 위 배상청구권은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이 아니어서 아직까지 존속한다는 입장이므로, 결국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하여 한·일간에 분쟁이 발생한 상태이다.

우리 헌법은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때 인간의 존엄성은 최고의 헌법적 가치이자 국가목표규범으로서 모든 국가기관을 구속하며, 그리하여 국가는 인간존엄성을 실현해야 할 의무와 과제를 안게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은 ‘국가권력의 한계’로서 국가에 의한 침해로부터 보호받을 개인의 방어권일 뿐 아니라, ‘국가권력의 과제’로서 국민이 제3자에 의하여 인간존엄성을 위협받을 때 국가는 이를 보호할 의무를 부담한다.

또한 헌법 제2조 제2항은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러한 재외국민 보호의무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는 “ 헌법 제2조 제2항에서 규정한 재외국민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에 의하여 재외국민이 거류국에 있는 동안 받는 보호는 조약 기타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와 당해 거류국의 법령에 의하여 누릴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의 정당한 대우를 받도록 거류국과의 관계에서 국가가 하는 외교적 보호와 국외거주 국민에 대하여 정치적인 고려에서 특별히 법률로써 정하여 베푸는 법률·문화·교육 기타 제반영역에서의 지원을 뜻하는 것이다.”라고 판시함으로써( 헌재 1993. 12. 23. 89헌마189, 판례집 5-2, 646), 국가의 재외국민에 대한 보호의무가 헌법에서 도출되는 것임을 인정한 바 있다.

한편,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의 계승을 천명하고 있는바, 비록 우리 헌법이 제정되기 전의 일이라 할지라도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여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위안부로 강제 동원되어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말살된 상태에서 장기간 비극적인 삶을 영위하였던 피해자들의 훼손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시켜야 할 의무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지금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부담하는 가장 근본적인 보호의무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위와 같은 헌법 규정들 및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문언에 비추어 볼 때, 피청구인이 위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의 절차로 나아갈 의무는 일본국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불법행위에 의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당한 자국민들이 배상청구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보호하여야 할 헌법적 요청에 의한 것으로서, 그 의무의 이행이 없으면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중대하게 침해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피청구인의 작위의무는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로서 그것이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라고 할 것이다.

나아가 특히, 우리 정부가 직접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한 것은 아니지만, 위 피해자들의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의 실현 및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회복을 하는 데 있어서 현재의 장애상태가 초래된 것은 우리 정부가 청구권의 내용을 명확히 하지 않고 ‘모든 청구권’이라는 포괄적 개념을 사용하여 이 사건 협정을 체결한 것에도 책임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피청구인에게 그 장애상태를 제거하는 행위로 나아가야 할 구체적 작위의무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다. 공권력의 불행사

피청구인은, 우리 정부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기로 하면서 여러 가지 외교상의 방식 중 일본 정부에 대한 금전적 배상책임은 묻지 않는 대신, 우리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하여 경제적 지원 및 보상을 해주는 한편,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보다 중요하고 근본적 문제인 철저한 진상규명, 공식적인 사죄와 반성, 올바른 역사교육의 실시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며 국제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위안부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을 택하였는바, 이는 우리 정부에 폭넓게 인정되는 외교적 재량권을 정당하게 행사한 것이고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1항의 ‘외교상의 경로’를 통한 분쟁해결조치에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므로 공권력의 불행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공권력의 불행사는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이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해석상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갈 의무의 불이행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일본에 대한 위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 문제를 도외시한 외교적 조치는 이 사건 작위의무의 이행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청구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가해자인 일본국이 잘못을 인정하고 법적 책임을 지는 것과 우리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회보장적 차원의 금전을 제공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므로, 우리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일부 생활지원 등을 하고 있다고 하여 위 작위의무의 이행으로 볼 수는 없다.

피청구인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우리 정부는 1990년대부터 일본 정부에 대해서 금전적인 배상책임은 묻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하였고, 한·일협정 관련문서의 전면공개가 이루어진 후에도 2006. 4. 10. “일본 측과 소모적인 법적 논쟁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크므로 이와 관련되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문제해결을 위한 조치를 하지 않겠다.”고 관련단체에 회신한 바 있으며, 이 사건 청구가 제기된 이후 제출한 서면에서도 이 사건 협정의 해석과 관련한 분쟁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힌 바 있다.

한편, 우리 정부는 앞서 본 바와 같이 2005. 8. 26. ‘민관공동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선언한 바 있는데, 이것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외교상 경로를 통한 분쟁해결조치에 해당된다고는 보기 어렵고, 가사 해당된다고 보더라도 이러한 분쟁해결노력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하고 더 이상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라 중재회부절차로 나아가야 할 것인데, 피청구인은 2008년 이후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별다른 계획도 없다는 것이므로, 어느 모로 보더라도 작위의무를 이행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라. 소결

그렇다면 피청구인은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여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본안에 나아가 피청구인이 위와 같은 작위의무의 이행을 거부 또는 해태하고 있는 것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인지 여부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5. 본안에 대한 판단

가. 이 사건 협정 관련 해석상 분쟁의 존재

(1)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은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합의의사록 제2조 (g)항은 위 제2조 제1항에서 말하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되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에는 한·일회담에서 한국측으로부터 제출된 ‘한국의 대일 청구 요강’(소위 8개 항목)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청구가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동 대일청구요강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됨을 확인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2)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의 해석과 관련하여, 앞서 본 바와 같이, 일본국 정부 및 사법부의 입장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포함한 우리 국민의 일본국에 대한 배상청구권은 모두 포괄적으로 이 사건 협정에 포함되었고 이 사건 협정의 체결 및 그 이행으로 포기되었거나 그 배상이 종료되었다는 것이며, 반면, 우리 정부는 2005. 8. 26. ‘민관공동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과 같이 일본 정부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인정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3) 피청구인은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과정에서도, 일본은 이 사건 협정에 의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이 소멸되었다는 입장인 반면 우리 정부의 입장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은 이 사건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어서 이에 대하여는 양국의 입장 차이가 있고, 이는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분쟁’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반복하여 확인하였다.

또한 이 사건 변론 후 제출한 2009. 6. 19.자 참고서면에서도 “우리 정부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기로 하면서, 여러 가지 외교상의 방식 중 … 방식을 택한 것은 우리 정부에 폭넓게 인정되는 재량권을 정당하게 행사한 것으로, 이 역시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1항의 ‘외교상의 경로’를 통한 분쟁해결조치에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라고 하여 이 사건 협정의 해석상 분쟁이 존재함을 전제로 주장을 전개하였다.

(4) 따라서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의 대일청구권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이 포함되는지 여부에 관한 한·일 양국 간에 해석 차이가 존재하고, 그것이 위 협정 제3조의 ‘분쟁’에 해당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나. 분쟁의 해결절차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1항은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의 분쟁은 우선 외교적인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고 규정하고, 제2항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는 분쟁은 중재에 의하여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위 규정들은 협정체결 당시 그 해석에 관한 분쟁의 발생을 예상하여 그 해결의 주체를 협정체결 당사자인 각 국가로 정하면서, 분쟁해결의 원칙 및 절차를 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피청구인은 위 분쟁이 발생한 이상, 협정 제3조에 의한 분쟁해결절차에 따라 외교적 경로를 통하여 해결하여야 하고, 그러한 해결의 노력이 소진된 경우 이를 중재에 회부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이러한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가지 않은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인지 여부를 검토하기로 한다.

다. 피청구인의 부작위의 기본권 침해 여부

(1) 선례와의 구별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2항에 따라 중재요청을 하지 않은 부작위가 위헌이라고 주장한 사건( 헌재 2000. 3. 30. 98헌마206 중재요청불이행 위헌확인사건)에서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형식과 내용으로 보나 외교적 문제의 특성으로 보나,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외교상의 경로를 통할 것인가 아니면 중재에 회부할 것인가에 관한 우리나라 정부의 재량범위는 상당히 넓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 사건 협정당사자인 양국 간의 외교적 교섭이 장기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하여 재일 한국인 피징용 부상자 및 그 유족들인 청구인들과의 관계에서 정부가 반드시 중재에 회부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마찬가지로 청구인들에게 중재회부를 해달라고 우리나라 정부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고 보기도 어려우며, 국가의 재외국민보호의무( 헌법 제2조 제2항)나 개인의 기본적 인권에 대한 보호의무( 헌법 제10조)에 의하더라도 여전히 이 사건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한·일 양국 간의 분쟁을 중재라는 특정 수단에 회부하여 해결하여야 할 정부의 구체적 작위의무와 청구인들의 이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위 결정은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2항의 ‘중재회부에 의한 분쟁해결’ 방식을 취할 의무가 있는지에 관한 것으로서, 제3조 제1항에서 우선적으로 외교상의 통로를 통한 문제해결을 모색하도록 하고 있음에도 이를 제쳐 두고 제3조 제2항의 ‘중재회부방식에 의한 분쟁해결’을 도모할 피청구인의 의무를 곧바로 도출할 수 있는지가 문제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의 쟁점은,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1항, 제2항에 의한 분쟁해결로 나아가야 할 의무를 지는가 하는 점이고, 특히 제3조 제1항에서는 특정방식이 아닌 광범위한 외교상의 경로를 통한 해결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한 한·일 양국 간의 분쟁이 발생한 현 시점에서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을 모색하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을 하지 못하는 경우 중재회부로 나아가야 할 헌법적 작위의무가 있는지 여부이다.

즉 이 사건의 쟁점은,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 중 ‘특정 방법을 취할 작위의무’가 있는지 여부가 아니고,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위 협정의 규정에 따른 외교행위 등을 할 작위의무’가 있는지 여부이므로, 위 선례의 사안과는 구별된다고 할 것이다.

(2) 피청구인의 재량

외교행위는 가치와 법률을 공유하는 하나의 국가 내에 존재하는 국가와 국민과의 관계를 넘어 가치와 법률을 서로 달리하는 국제환경에서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므로, 정부가 분쟁의 상황과 성질, 국내외 정세, 국제법과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관행 등을 감안하여 정책결정을 함에 있어 폭넓은 재량이 허용되는 영역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헌법상의 기본권은 모든 국가권력을 기속하므로 행정권력 역시 이러한 기본권 보호의무에 따라 기본권이 실효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행사되어야 하고, 외교행위라는 영역도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으로는 볼 수 없다. 특정 국민의 기본권이 관련되는 외교행위에 있어서, 앞서 본 바와 같이 법령에 규정된 구체적 작위의무의 불이행이 헌법상 기본권 보호의무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기본권 침해행위로서 위헌이라고 선언되어야 한다. 결국 피청구인의 재량은 침해되는 기본권의 중대성, 기본권침해 위험의 절박성, 기본권의 구제가능성, 진정한 국익에 반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국가기관의 기본권 기속성에 합당한 범위 내로 제한될 수 밖에 없다.

(3) 부작위로 인한 기본권 침해 여부

(가) 침해되는 기본권의 중대성

일본군위안부 피해는, 일본국과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동원되고 그 감시 아래 일본군의 성노예를 강요당한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달리 그 예를 발견할 수 없는 특수한 피해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의 특수성은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일본의 재판소에 의해서도 확인되었다. 1994. 9. 2. 발표된 유엔의 NGO 국제법률가위원회의 보고서와 1996. 2. 6. 공표된 유엔 인권위원회 ‘여성에 대한 폭력 특별보고자’ 쿠마라스와미의 보고서는 이를 “군사적 성노예”라고 정의했다. 1998. 8. 12. 공표된 유엔 인권소위 ‘전시 성노예제 특별보고자’ 게이 맥두걸의 보고서는, 일본군위안부를 강요한 행위는 ‘인도에 대한 죄’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라고 단언했다. 2007. 7. 미국 하원이 채택한 일본군위안부 결의안도 일본군위안부를 “일본 정부에 의한 강제 군대 매춘제도이자 잔학성과 규모면에서 20세기 최대의 인신매매 범죄”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1998. 4. 27.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입법부작위책임을 인정하여 손해배상을 명한 일본의 야마구찌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 지부 판결은, 그 피해를 “철저한 여성차별·민족차별사상의 표현이며, 여성의 인격의 존엄을 근저에서부터 침해하고, 민족의 긍지를 유린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일본국에 의하여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하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배상청구권은 헌법상 보장되는 재산권일 뿐 아니라, 그 배상청구권의 실현은 무자비하게 지속적으로 침해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신체의 자유를 사후적으로 회복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므로, 그 배상청구권의 실현을 가로막는 것은 헌법상 재산권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근원적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침해와 직접 관련이 있다( 헌재 2008. 7. 31. 2004헌바81, 판례집 20-2 상, 91, 100-101 참조).

(나) 기본권 침해 구제의 절박성

1991년경부터 최근까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의 법정에서 진행해 온 3차례의 소송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소멸하였다는 등의 이유로 패소 확정되었다.

이제 일본의 법정을 통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사법적 구제, 또는 일본 정부의 자발적 사죄 및 구제조치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일본에 의하여 군대성노예로 내몰렸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도 60여년이 훨씬 넘었고,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지도 20년 남짓 흘렀다.

한편, 2006. 3. 13. 기준으로 ‘일제하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의 적용대상자 225명 중 생존자는 125명이었으나, 이 사건 심판청구의 심리 중에도 잇따라 사망하여, 2011. 3.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75명에 불과하고, 이 사건 청구인들은 본래 109명이었으나, 그 사이에 45명이 사망하고 64명만이 생존해 있다. 나아가 현재 생존해 있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도 모두 고령이어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경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을 실현함으로써 역사적 정의를 바로세우고 침해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 있다.

(다) 기본권의 구제가능성

피청구인은 중재회부절차로 나아갈 경우의 결과의 불확실성 등을 고려하여 우리 정부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하여 경제적 지원 및 보상을 해주는 대신 일본에게 금전적인 배상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침해되는 기본권이 중대하고 그 침해의 위험이 급박하다고 하더라도 구제가능성이 전혀 없는 경우라면 피청구인의 작위의무를 인정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구제가 완벽하게 보장된 경우에만 작위의무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구제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족하다 할 것이며, 이때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에 대한 배상청구가 최종적으로 부인되는 결론이 나올 위험성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한다면 피청구인으로서는 피해자들의 의사를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

2006년 유엔 국제법위원회에 의해 채택되고 총회에 제출된 ‘외교적 보호에 관한 조문 초안’의 제19조에서도, 외교적 보호를 행사할 권리를 가진 국가는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에 특히 외교적 보호의 행사가능성을 적절히 고려하여야 하고, 가능한 모든 경우에 있어서, 외교적 보호에의 호소 및 청구될 배상에 관한 피해자들의 견해를 고려해야 함을 권고적 관행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청구인들은 이 사건 심판청구를 통하여 피청구인의 작위의무의 이행을 구하고 있으므로 피해자들인 청구인들의 의사는 명확하다 할 것이고, 앞서 살펴 본 이 사건 협정의 체결 경위 및 그 전후의 상황, 여성들에 대한 유례 없는 인권침해에 경악하면서 일본에 대하여 공식적 사실인정과 사죄, 배상을 촉구하고 있는 일련의 국내외적인 움직임을 종합해 볼 때,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갈 경우 일본국에 의한 배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미리 배제하여서는 아니된다.

(라) 진정으로 중요한 국익에 반하는지 여부

피청구인은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의한 분쟁해결조치를 취하면서 일본 정부의 금전배상책임을 주장할 경우 일본 측과의 소모적인 법적 논쟁이나 외교관계의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구체적 작위의무의 이행을 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정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전략적 선택이 요구되는 외교행위의 특성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소모적인 법적 논쟁으로의 발전가능성’ 또는 ‘외교관계의 불편’이라는 매우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사유를 들어, 그것이 기본권 침해의 중대한 위험에 직면한 청구인들에 대한 구제를 외면하는 타당한 사유가 된다거나 또는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할 국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과거의 역사적 사실 인식의 공유를 향한 노력을 통해 일본 정부로 하여금 피해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다하도록 함으로써 한·일 양국 및 양 국민의 상호이해와 상호신뢰가 깊어지게 하고, 이를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그와 같은 비극적 상황이 연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한·일관계의 미래를 다지는 방향인 동시에, 진정으로 중요한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마) 소결

피청구인의 이 사건 부작위는 청구인들의 중대한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라. 소결론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및 전문과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문언 등에 비추어 볼 때,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의 절차로 나아갈 의무는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로서 그것이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라 할 것이고, 청구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재산권 등 기본권의 중대한 침해가능성, 구제의 절박성과 가능성 등을 널리 고려할 때, 피청구인에게 이러한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재량이 있다고 할 수 없으며, 피청구인이 현재까지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절차를 이행할 작위의무를 이행하였다고 볼 수 없다.

결국, 피청구인의 이러한 부작위는 헌법에 위반하여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6. 결 론

그렇다면 이 사건 심판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아래 7.과 같은 재판관 조대현의 인용보충의견, 아래 8.과 같은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민형기, 재판관 이동흡의 반대의견을 제외한 나머지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7. 재판관 조대현의 인용보충의견

청구인들은 일제에 의하여 강제 동원되어 일본군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로서 일본국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지는데, 한일청구권협약에 의하여 그러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존부와 범위가 법원의 재판절차에 의하여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구인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침해를 주장하는 헌법소원심판을 거부할 수는 없다.

국가는 일본군위안부들이 일본국에 대하여 가지는 손해배상청구권을 확인하고 기본권으로 보장하여야 한다( 헌법 제10조 후문). 그런데도 대한민국 정부는 1965. 6. 22. 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하여 일본국으로부터 3억 달러를 무상으로 받고, 양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임을 확인하고, 그러한 청구권에 관하여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고 약정하였다.

그리고 일본국 재판소는 이러한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하여 청구인들은 일본국에게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협정에 의하여 청구인들의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된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는 견해가 나뉘어져 있다. 만일 한일청구권협정이 청구인들의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소멸시키는 것이라면, 청구인들의 재산권을 보장할 의무를 지는 국가가 청구인들의 재산권을 소멸시키는 조약을 체결한 셈이 된다. 그리고 한일청구권협정이 청구인들의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청구인들은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이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하여 저지되고 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은 청구인들의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 행사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하여 방해되는 위헌적인 사태를 해소시키기 위하여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에 따라 일본국을 상대로 외교적 교섭이나 중재절차를 추진할 의무를 진다고 봄이 상당하다.

그리고 이와 같이 대한민국이 일본국과 체결한 한일청구권협정이 청구인들의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행사를 가로막고 있는 이상, 그러한 조약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일본국의 식민통치로 인하여 대한민국 국민들이 일본국에 대하여 가지는 청구권을 일괄적으로 타결하기 위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국으로부터 3억 달러를 받아서 국민들의 일본국에 대한 청구권을 대신 보상하고자 한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그러한 조약이 헌법 제37조 제2항에 위반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다만, 그렇게 선해하더라도, 대한민국 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하여 일본국으로부터 무상자금 3억 달러를 받고 국민들이 일본국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협정함으로써 일본국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 국민들에 대하여 그 손해를 보상할 의무를 진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일본국으로부터 무상자금 3억 달러를 받은 다음 1966. 2. 19. ‘청구권자금의 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지만, 피징용 사망자만 보상하였을 뿐 청구인들과 같은 일본군위안부는 보상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1993. 6. 11. ‘일제하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을 제정하여 일본군위안부에게 생활안정지원을 위한 일시금과 월지원금을 지급하고, 임대주택의 우선 임대, 생계급여, 의료급여, 간병인 등을 지원하여 왔지만, 청구인들의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온전히 만족시킬 정도로 충분히 보상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에 따라 일본국을 상대로 외교적 교섭이나 중재절차를 추진하여 한일청구권협정의 위헌성을 제거할 의무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인하여 청구인들이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 손해를 완전하게 보상할 책임을 진다고 선언하여야 한다.

그리고 일본국을 상대로 한 외교적 교섭이나 중재절차에 의하여 청구인들의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 행사의 장애가 해소될 가능성은 희박하고 청구인들에게 헛된 소망과 그것이 빚어내는 좌절과 절망의 고통만 안겨줄 우려가 크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청구인들의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완전하게 보상할 의무가 있음을 더욱 강조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청구인들이 모두 고령이기 때문에 청구인들에 대한 국가의 보상 조치는 시급하게 실시될 필요가 있다.

8.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민형기, 재판관 이동흡의 반대의견

우리는 다수의견과 달리, 우리 헌법상의 명문 규정이나 어떠한 헌법적 법리에 의하더라도 ‘청구인들에 대하여 피신청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서 정한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가야 할 작위의무’가 있다고 할 수 없어, 청구인들의 이 사건 헌법소원은 부적법하다고 보므로, 아래와 같이 반대의견을 개진한다.

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하면 공권력의 행사뿐 아니라 공권력의 불행사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공권력의 불행사로 말미암아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가 위 헌법소원을 제기할 자격이 있는 것이므로,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이에 의거하여 기본권의 주체가 행정행위 내지 공권력의 행사를 청구할 수 있음에도 공권력의 주체가 그 의무를 해태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된다( 헌재 1991. 9. 16. 89헌마163, 판례집 3, 505, 513; 2000. 3. 30. 98헌마206, 판례집 12-1, 393, 401 등 참조).

또한 여기서 말하는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가 의미하는 바가, 헌법상 명문으로 작위의무를 규정하고 있거나, 헌법의 해석상 작위의무가 도출되거나, 법령에 구체적으로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3가지 경우를 포괄하고 있음도 역시 우리 재판소의 확립된 판례이다( 헌재 2004. 10. 28. 2003헌마898, 판례집 16-2하, 212, 219 참조).

그런데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헌법의 명문규정상, 헌법해석상, 법령상 도출되는 공권력 주체의 구체적 작위의무는 ‘기본권의 주체인 국민에 대한’ 의무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에 의거하여 기본권의 주체가 행정행위 내지 공권력의 행사를 청구할 수 있음에도 공권력의 주체가 그 의무를 해태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로서 그 침해의 원인이 되는 행정권력의 부작위를 대상으로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견은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헌법 전문(前文) 중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부분,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문언을 종합하여, 이 사건 피청구인의 작위의무가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로서 그것이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나아가 피청구인이 부담하는 구체적 작위의무의 내용을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의 절차로 나아갈 의무”라고 보았는바, 과연 이러한 해석이 타당한 것인지 이하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나. 우선,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전문의 규정 자체 또는 그 해석에 의하여 ‘헌법에서 유래하는 구체적 작위의무’가 도출될 수는 없다.

국가와 국민의 권리와 의무관계를 규정한 헌법의 조항들 중에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의미로 국민의 기본권 기타 권리를 부여하는 조항들도 있지만, 개방적·추상적·선언적인 문구로 규정되어 있어서 헌법해석이나 구체적 법령 등이 매개되어야만 국가와 국민간에 구속적인 권리의무를 발생시키는 조항들도 있다. 그런데 ‘국민의 불가침의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10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2조 제2항은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국가가 국민에 대하여 기본권 보장 및 보호의무를 부담한다는 국가의 일반적·추상적 의무를 규정한 것일 뿐 그 조항 자체로부터 국민을 위한 어떠한 구체적인 행위를 해야 할 국가의 작위의무가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前文)의 문구 또한 마찬가지다. 비록 헌법 전문(前文)이 국가적 과제와 국가적 질서형성에 관한 지도이념·지도원리를 규정하고 국가의 기본적 가치질서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규범화한 것으로서 최고규범성을 가지고 법령해석과 입법의 지침이 되는 규범적 효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 자체로부터 국가의 국민에 대한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나올 수는 없다.

이처럼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헌법 전문으로부터 국가의 구체적 작위의무와 그러한 작위의무를 청구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가 도출되지 않는다는 점은 우리 재판소의 확립된 판례이기도 하다(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에 관하여는 헌재 2000. 3. 30. 98헌마206, 판례집 12-1, 393, 402-403 ; 1998. 5. 28. 97헌마282, 판례집 10-1, 705, 710, 헌법 전문에 관하여는 헌재 2005. 6. 30. 2004헌마859, 판례집 17-1, 1016, 1020-1021 참조).

따라서, 아무리 이 사건 청구인들의 기본권 침해상태가 중대하고 절박하다 하더라도,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헌법 전문만에 기하여서는 청구인들에 대하여 국가가 어떤 행위를 하여야 할 구체적인 작위의무를 도출해 낼 수는 없고, 결국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법령’이 존재하여야 이를 매개로 국가의 청구인들에 대한 구체적 작위의무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규정된 분쟁해결절차에 관한 조항이 위에서 말하는 ‘법령에 구체적으로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 해당하여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도출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 본다.

(1) 먼저, 법령에 구체적으로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서의 ‘법령에 규정된 구체적 작위의무’란 “국가가 국민에 대하여 특정의 작위의무를 부담한다”는 내용이 법령에 기재된 경우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규정된 작위의무에 의거하여 ‘기본권의 주체가 행정행위 내지 공권력의 행사를 청구할 수 있음에도 공권력의 주체가 그 의무를 해태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되는 것이므로( 헌재 2000. 3. 30. 98헌마206, 판례집 12-1, 393), 법령에 규정되는 구체적 작위의무는 ‘기본권의 주체인 국민에게 국가에 대하여 특정 작위의무의 이행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내용’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가 위와 같은 구체적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기본권을 침해당하였다고 주장하는 헌법소원에 있어서 기본권 침해 가능성 내지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도 당연히 요구되는 전제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이나, 국민에 대하여 구속력을 가지는 행정법규에 구체적인 권리를 국민에게 부여하는 내용이 있다면 이는 ‘법령에 구체적으로 작위의무가 규정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까지 우리 재판소에 제기된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은 거의 모두가 국내 법령에 국가의 청구인에 대한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지, 그 의무에 대한 부작위가 있는지가 쟁점인 사건들이었으며, 해당 법령에 문제된 구체적 작위의무가 행정권력의 국민에 대한 기속행위로 규정되어 있거나, 재량행위로 규정되어 있지만 공권력 불행사의 결과 청구인에 대한 기본권 침해의 정도가 현저하다는 등의 사유로 기속행위로 해석해야 할 경우에는 구체적 작위의무가 인정되었고(전자에 관하여는, 헌재 1998. 7. 16. 96헌마246, 판례집 10-2, 283; 2004. 5. 27. 2003헌마851, 판례집 16-1, 699, 후자에 관하여는, 헌재 1995. 7. 21. 94헌마136, 판례집 7-2, 169 참조), 반대로 순수한 행정청의 재량행위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청구인에 대한 구체적 작위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하기도 하였다( 헌재 2005. 6. 30. 2004헌마859, 판례집 17-1).

하지만, 이 사건 협정과 같은 조약 기타 외교문서에서, 체약국이 서로 어떠어떠한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하자는 내용과 절차가 규정되어 있다면 이는 기본적으로 체약국 당사자 사이에서 체약상대방에 대하여 부담할 것을 전제로 마련된 것이므로, 일정한 의무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하더라도 체약국 당사자가 상대방 국가에 대하여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조약에 근거하여 자국이 상대방 국가에 대하여 취할 수 있는 조약상 권리의무를 이행하라’고 자국 정부에 요구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러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자국 국민에게 부여하는 내용’의 구체적 문구가 해당 조약에 기재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조약에 그러한 내용의 명시적 문구가 없는 이상, 해당 조약이 국민의 권리관계를 대상으로 한다는 이유만으로 조약상 정해진 절차상 조치를 취할 것을 자국 정부에 요구할 권리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이 사건 협정은 양국 간 또는 일국 정부와 타국 국민 간, 양국 국민 상호간의 ‘재산, 권리, 이익,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대상으로 하였는바(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 이 사건 청구인들과 같은 위안부피해자들에 대한 일본국의 배상책임문제는 위 협정의 대상에 포함되었는지 여부가 분명치 아니할 정도로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문구로 기재하고 있어, 그 결과 실제로 양국 간의 입장 차이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권리문제에 관하여 이 사건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하여 ‘분쟁’이 발생한 상태라고는 볼 수 있다. 하지만, 나아가 이 사건 협정에서 관련국 국민에게 이 사건 협정 제3조상의 분쟁해결 절차에 나아갈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지 않은 이상,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관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위 조약상 분쟁해결절차를 이행하라고 자국 정부에 대하여 요구할 구체적 권리가 인정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협정 내용에 기하여 다수의견이 인정한 바와 같은 국가의 구체적 작위의무를 도출해 낼 수는 없다.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분쟁해결 절차에 나아가라고 자국 정부에 대하여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해당국 국민에게 부여하는 내용의 문구가 이 사건 협정 어디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헌법 전문에 의하여 위와 같은 구체적 작위의무가 직접 인정될 수도 없으므로, 결국 이 사건 협정과 위 헌법 규정을 종합하더라도 이 사건 청구인들에 대한 국가의 구체적 작위의무는 도출될 수 없다.

(2) 다음으로, 이 사건 협정 제3조가 규정하고 있는 내용 자체에 비추어 볼 때 다수의견이 말하는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제3조의 규정에 따른 외교행위를 할 작위의무”라는 것이 ‘구체적인’ 행위를 해야 하는 ‘의무’라고 볼 수도 없다.

(가) 이 사건 협정 제3조는,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제1항), “1.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어느 일방 체약국의 정부가 타방 체약국의 정부로부터 분쟁의 중재를 요청하는 공한을 접수한 날로부터 …… 로 구성되는 중재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제2항)고 규정하고 있다. 어느 조항에도, 분쟁이 있으면 ‘반드시’ 외교적 해결절차로 나아가야 한다거나 외교적 해결이 교착상태에 빠질 경우 ‘반드시’ 중재절차를 신청해야 한다는 ‘의무적’ 내용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는 문구는 외교적으로 해결하자는 양 체약국 사이의 외교적 약속 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없다. “중재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는 것 역시 “중재를 요청하는 공한이 접수되면” 회부되는 것인데, 어느 문구에도 중재를 요청하여야 한다는 ‘의무적’ 요소가 들어 있다고 해석할 만한 근거는 발견할 수 없다. 결국 제3조 제1항, 제2항 어디에서도 외교상 해결절차로 나아가야 할 ‘의무’, 외교상 해결이 안되면 중재절차로 나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해석해 낼 수는 없다.

그런데 다수의견은, 이러한 해석상 의문점에 대하여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침해되는 청구인들의 기본권의 중대성, 기본권 침해 구제의 절박성에만 근거하여 “피청구인에게 이러한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재량이 있다고 할 수 없으며”라고 판시하고 있는데, 국가간 조약에 기재된 의무성조차 없는 문구를, 그로 인하여 사실상 영향을 받는 국민이 절박한 사정에 처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방 체약국의 정부인 피청구인에 대하여 조약상 행위를 강제할 수 있는 ‘의무’조항이라고 해석해 버린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기재된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가는 행위는 규정의 형식과 내용으로 볼 때 양 체약국의 ‘재량행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이 사건 협정 제3조를 근거로 재일 한국인 피징용 부상자들의 일본국에 대한 보상청구권에 관한 다툼을 중재에 회부해야 할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국가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청구한 헌법소원사건에서, 우리 재판소 역시 이를 재량행위라고 해석한 바 있고,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 사건 협정 제3조는 이 사건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국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하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일방체약국의 정부가 상대국 정부에 중재를 요청하여 중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위 규정의 형식과 내용으로 보나, 외교적 문제의 특성으로 보나, 이 사건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외교상의 경로를 통할 것인가 아니면 중재에 회부할 것인가에 관한 우리나라 정부의 재량범위는 상당히 넓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 사건 협정당사자인 양국간의 외교적 교섭이 장기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하여 재일 한국인 피징용 부상자 및 그 유족들인 청구인들과의 관계에서 정부가 반드시 중재에 회부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마찬가지 이유로, 청구인들에게 중재회부를 해 달라고 우리나라 정부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고 보기도 어렵다』( 헌재 2000. 3. 30. 98헌마206, 판례집 12-1, 393, 402)

다수의견은, 위 선례는 제3조 제1항의 ‘외교적 해결의무’를 제쳐 두고 제2항의 ‘중재절차회부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을 근거로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기에 ‘제3조 전체에 기한 분쟁해결절차 이행의무’를 문제삼고 있는 이 사건에서는 결론을 달리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위 선례와 이 사건은 차별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위 선례의 취지를 오해한 것이다. 위 선례에서 구체적인 작위의무를 인정하지 않은 주된 근거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기한 ‘외교적 해결’이나 ‘중재절차회부’ 모두 ‘의무사항’이 아니고 우리나라의 외교적 ‘재량사항’이라는 데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나) 나아가 이 사건 협정 제3조가 규정하고 있는 ‘외교적 해결’, ‘중재절차회부’에 어떤 의무성이 있다고 본다 하더라도, 그것이 ‘구체적인’ 작위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할 의무’란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 재외국민 보호의무,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할 국가의 의무, 신체장애자 등의 복지향상을 위하여 노력해야 할 국가의 의무, 보건에 관한 국가의 보호의무나 마찬가지로, 국가의 일반적·추상적 의무 수준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국가의 일반적·추상적 의무란 그 자체가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아니므로 비록 헌법에 명시적인 문구로 기재되어 있다 하더라도 국민이 국가에 대하여 그 의무의 이행을 직접 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작위의무로 탈바꿈되지 않는다. 국민과 국가의 규범적 관계를 규율하는 근본규범인 ‘헌법’에 명시하고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국가에 대하여 그 의무의 이행을 구할 수 없는데, 하물며 헌법보다 하위규범인 ‘조약’에 명시되어 있을 뿐인데도 이를 근거로는 조약의 당사자도 아닌 국민이 국가에 대하여 의무의 이행을 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작위의무로 탈바꿈된다고 해석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외교적 해결을 할 의무’란 그 이행의 주체나 방식, 이행정도, 이행의 완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판단기준을 마련하기도 힘들고, 그 의무를 불이행하였는지 여부의 사실확정이 곤란한 고도의 정치행위 영역에 해당하므로, 헌법재판소의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기는 하지만 권력분립원칙상 사법자제가 요구되는 분야이다. 이 사건 협정만 보더라도, 국내 위안부피해자 문제의 심각성과 이에 반하여 한일간 교류와 협력을 지속해야 하는 한일 간의 미묘한 외교관계에 비추어 볼 때, 어느 정도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이행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인지, 이 사건 협정이 체결된 지 현재까지 40여년이 지났는데 초기에 외교적 해결노력을 하다가 현재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거나 청구인들이 만족할 만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하여 외교적 해결의무를 불이행한 것으로 되는 것인지, 제2항의 중재절차회부의무는 그러면 언제쯤 발생한다고 보아야 할 것인지 등 그 이행여부를 판단할 아무런 명확한 기준을 발견할 수 없다. 과연 이러한 실질을 가지는 ‘외교상 의무’를 국민이 국가에 대하여 그 이행을 요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작위의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행내용이 구체적인지 여부는 불문하고 조약에 기재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헌법재판소가 정부에 막연히 ‘외교적 노력을 하라’는 의무를 강제적으로 부과시키는 것은, 헌법이 정치적, 외교적 행위들에 관한 정책판단, 정책수립 및 집행에 관한 권한을 담당하고 있는 행정부에 부여하고 있는 권력분립원칙에 반할 소지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라. 소결

따라서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헌법 전문의 규정,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기하여서는 이 사건 청구인들에 대하여 국가가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정한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가야 할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청구인이 위 분쟁해결절차에 나아가지 않고 있는 부작위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침해당하였다고 주장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는 부적법하여 각하하여야 할 것이다.

일본에 의하여 강제로 위안부로 동원된 후 인간으로서의 삶을 송두리째 박탈당하고 그 가해자인 일본국으로부터 인간적 사과마저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이 사건 청구인들의 절박한 심정을 생각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구든 공감하지 않을 수 없고, 어떻게든 우리 정부가 국가적 노력을 다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우리 모두 간절하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기본적으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재판을 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재판당사자가 처해 있는 상황이 아무리 국가적으로 중대하고 개인적으로 절박하다 하더라도 헌법과 법률의 규정 및 그에 관한 헌법적 법리를 뛰어넘어 설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사건 청구인들이 처해 있는 기본권구제의 중요성, 절박성을 해결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을 헌법이나 법령, 기타 헌법적 법리에 의하여도 발견해 낼 수 없다면, 결국 이들의 법적 지위를 해결하는 문제는 정치권력에 맡겨져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고, 헌법과 법률, 헌법해석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헌법재판소가 피청구인에게 그 문제 해결을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이 권력분립의 원칙상 헌법재판소가 지켜야 하는 헌법적 한계인 것이다.

재판장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조대현 
 
재판관 
김종대 
 
재판관 
민형기 
 
재판관 
이동흡 
 
재판관 
목영준 
 
재판관 
송두환 
 
재판관 
박한철 
 
재판관 
이정미 

조대현(퇴임으로 서명날인 불능)

의견주셔서 감사합니다!